안녕하세요! 성징어의 IT 잉크사이트(IT Ink-Sight) 성징어입니다.
정부 문서에서 ‘AI 에이전트’라는 단어가 나오면 보통은 민원 챗봇이나 행정 자동화 얘기입니다. 그런데 8월 24일 제1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의결된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에는 좀 다른 용례가 등장합니다. 연구자가 창업할 때 필요한 온갖 잡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AI 에이전트를 정부가 직접 구축해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행정 서비스에 AI를 넣겠다는 게 아니라, 창업 지원이라는 행정 업무 자체를 AI가 수행하도록 설계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번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같은 회의에서 통과된 대한민국 인공지능 윤리원칙이나 자율주행 로드맵에 비해 주목은 덜 받았지만, 실무 관점에서는 훨씬 구체적인 문서입니다.
7대 SEED가 뭔지부터 짚고 가면
이번 전략을 이해하려면 7대 SEED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8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성장동력 7대 SEED 보고회’에서 공개된 국가 프로젝트인데,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 공급망 일곱 개 분야를 묶은 것입니다.
정부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로 구성된 ‘3대 MEGA 프로젝트’를 지금 당장의 경쟁력으로 삼고, 7대 SEED를 그다음 10년, 20년을 책임질 차세대 엔진으로 키우겠다는 구도를 잡았습니다. 목표 시점도 꽤 구체적입니다. 2035년까지 경수형 SMR 상용화, 2035년까지 한국형 핵융합 실증로 건설, 2029년 100큐비트급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 2030년 달 착륙, 2035년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 2035년까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상용화 같은 식이죠.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그 기술로 회사가 굴러가게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요. 8월 12일 보고회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도 대부분 이 지점을 겨눴습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은 그 간극을 메우겠다고 나온 후속 문서입니다.
왜 연구실 성과는 회사로 잘 안 이어질까
딥테크 창업이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 시간입니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몇 달이면 시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지만, SMR이나 핵융합, BCI 같은 분야는 손익분기점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게 예사입니다. 8월 12일 보고회에서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가 “딥테크는 손익분기점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 R&D 초기부터 모험자본이 참여하고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둘째, 실증 인프라입니다. 전남중 한국화학연구원 센터장은 한국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원천기술을 선도하고 있지만 파일럿라인과 고가 장비, 실증 공간이 부족하다고 짚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실증을 시작해 데이터를 쌓고 있다는 거죠.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는 더 노골적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BCI 인체 적용 전에 필요한 뇌 생체적합성 공인시험시설이 국내에 없어서 중국에서 시험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셋째, 연구자 본인의 역량 문제입니다. 기술은 세계 수준인데 법인 설립, 지분 구조 설계, IR 자료 작성, 특허 출원 전략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런 잡무 때문에 연구 시간을 뺏기다 보면 창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은 이 세 가지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건드립니다.
승부수 하나, R&D 성과를 골라서 창업으로 연결
첫 번째 축은 우수 R&D 성과를 선별해 창업 지원과 연계하는 것입니다. 말은 단순한데, 실제로는 기존 방식과 꽤 다릅니다.
지금까지 정부 R&D는 과제가 끝나면 결과보고서를 내고 종료되는 구조였습니다. 그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지는 연구자 개인의 의지와 운에 달려 있었죠.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은 여기에 선별 단계를 넣습니다. 성과 중에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것을 골라내 창업 지원 트랙에 태우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딥테크 실증종합지원센터와 분야별 거점을 구축하는 계획이 붙습니다. 앞서 나온 실증 인프라 부족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항목입니다. 페로브스카이트 파일럿라인이든 BCI 전임상 시설이든, 개별 기업이 혼자 갖추기 어려운 설비를 공동으로 쓰게 만들자는 접근이죠.
다만 이 부분은 실행 난이도가 높습니다. 거점을 어디에 몇 개나 두느냐부터 지역 안배 논리가 개입하기 쉽고, 장비 도입 후 운영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증센터를 지어놓고 가동률이 낮아 방치되는 사례는 이미 여러 번 있었습니다.

승부수 둘, 연구자 창업을 돕는 AI 에이전트
두 번째 축이 앞서 언급한 AI 에이전트입니다. 창업 과정에 필요한 업무를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를 구축해 제공하겠다는 계획인데, 세부 사양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맡길 수 있을지 상상해보면 범위는 넓습니다. 법인 설립 절차 안내, 정부 지원사업 매칭, 사업계획서 초안 작성, 특허 선행기술 조사, IR 자료 구조 잡기 같은 것들이죠. 연구자가 반나절씩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일인데, 정형화된 부분이 많아 자동화 여지가 큽니다.
흥미로운 건 정부가 이런 시도를 자기 업무에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공공 AI 도입은 대국민 서비스, 그러니까 민원 안내나 서류 발급 쪽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반면 이번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의 AI 에이전트는 정책 집행 과정 자체를 자동화하는 성격입니다. 잘 굴러가면 다른 지원사업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고요.
물론 회의적으로 볼 여지도 충분합니다. 창업 지원 업무는 개별 상황 편차가 크고, 잘못된 안내가 실제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세제 혜택 요건을 잘못 안내하거나 지원사업 자격을 오판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문제가 바로 따라붙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의결된 대한민국 인공지능 윤리원칙에 ‘책임성’이 새 원칙으로 들어갔는데, 이 AI 에이전트가 그 원칙의 첫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승부수 셋, 사람과 사람을 잇는 네트워크
세 번째는 사람 쪽 처방입니다. 선배 창업가의 경험과 자산을 후배 연구자에게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이공계 청년의 딥테크 창업 역량을 높이는 ‘TeX-Corps’ 프로그램도 확대합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창업 관련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하고요.
마지막 항목이 은근히 중요합니다. 교수나 출연연 연구원이 창업하려면 겸직 승인, 지분 보유 제한, 연구성과 기술이전 절차 같은 제도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기관마다 기준이 다르고 해석도 제각각이라, 같은 조건인데 어떤 학교에서는 되고 어떤 학교에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돈을 더 붓는 것보다 이 규정을 손보는 게 체감 효과가 클 수도 있습니다.
8월 12일 보고회에서 배충식 KAIST 총장은 “7대 SEED가 모두 사람을 필요로 한다”며 대학 연구현장의 규제 샌드박스 확대를 주문했습니다. 이정익 KAIST 교수는 SMR과 핵융합이 인력을 상당 부분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며 원자력 산업 인력을 지금보다 1.5~2배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고요.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의 인재 항목은 이런 요구를 일부 반영한 결과로 보입니다.
승부수 넷, 투자형 R&D와 초장기 펀드
네 번째는 돈 얘기입니다. 여기에 가장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투자형 R&D’는 정부가 기업과 위험을 나누는 출자 방식입니다. 기존 R&D는 정부가 연구비를 주고 결과물을 받는 보조금 구조였습니다. 성공해도 정부에 돌아오는 게 없고, 실패하면 그냥 매몰비용이 되죠. 투자형 R&D는 정부가 지분을 갖는 방식이라 성공 시 회수가 가능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갚아야 할 돈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는 위험이 되고요. 이번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에서는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합니다.
여기에 장기간 투자가 가능한 초장기 펀드를 조성합니다. 일반 벤처펀드는 만기가 보통 8년 안팎인데, 딥테크는 그 안에 회수가 어렵습니다. 만기가 다가오면 펀드가 손실을 감수하고 지분을 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 사실을 아는 투자자는 애초에 딥테크에 안 들어갑니다. 만기를 늘린 펀드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됐는데, 이번에 정책 문서에 명시됐습니다.
대학과 출연연, 민간의 액셀러레이터(AC)와 벤처캐피털(VC)을 딥테크 투자·보육 전문기관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담겼습니다. 딥테크는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라, 심사 역량을 갖춘 투자기관을 늘리자는 취지로 읽힙니다.

승부수 다섯, 민관 공동 SPC라는 실험
다섯 번째는 특수목적법인(SPC)입니다. 첨단바이오와 화합물 반도체 분야에서 민관이 함께 투자하는 SPC 설립을 추진합니다.
이 아이디어의 출처가 흥미롭습니다. 8월 12일 보고회에서 신기욱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핵융합은 장기·고위험 사업이라 기업이 위험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며 SPC 같은 민관협력 모델을 제안했고, 배경훈 부총리가 SMR과 핵융합 등에 SPC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현장 제안이 12일 만에 정책 문서로 들어온 셈입니다.
SPC 방식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위험이 큰 사업에 별도 법인을 세워 참여자의 손실 범위를 한정할 수 있고, 정부와 민간이 각자 잘하는 역할을 나눠 맡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공공 부문의 SPC 참여는 늘 논란을 동반합니다. 손실이 나면 결국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고, 이익이 나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니까요. 지분 구조와 의사결정 권한, 회수 시점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관건입니다.
보조금과 투자, 뭐가 어떻게 다른가
투자형 R&D가 왜 새로운지 조금 더 풀어보겠습니다. 익숙한 개념 같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꽤 다릅니다.
기존 보조금 방식에서 정부는 심사를 통과한 과제에 연구비를 지급합니다. 기업은 그 돈을 쓰고 정산 서류를 냅니다. 여기서 정부의 관심사는 자연히 ‘돈을 규정대로 썼는가’로 쏠립니다. 회계 감사가 강해지고, 연구자는 영수증 관리에 시간을 쏟게 되죠. 반면 그 기술이 실제로 시장에서 팔리는지는 정부의 이해관계와 직접 연결되지 않습니다. 과제가 종료되면 관계도 끝나니까요.
투자형 R&D는 정부가 지분을 갖습니다. 그러면 정부의 관심사가 ‘이 회사가 잘 되는가’로 옮겨갑니다. 후속 투자 유치, 인력 확보, 판로 개척까지 신경 쓸 유인이 생기죠. 성공하면 지분 가치로 회수하니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요.
다만 이 구조는 정부가 감당해야 할 일을 늘립니다. 지분을 관리하려면 기업가치 평가, 후속 라운드 참여 여부 판단, 회수 시점 결정 같은 의사결정이 계속 필요합니다. 이건 회계 검증과는 완전히 다른 역량입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이 AC·VC를 전문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한 것도 이 역량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가 직접 다 하는 대신 전문 투자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힙니다.
7대 SEED 분야마다 사정이 다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7대 SEED를 한 묶음으로 부르지만, 창업 관점에서 보면 분야별 난이도가 크게 다릅니다.
첨단바이오는 그나마 창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는 편입니다. 신약개발 스타트업이 꾸준히 나오고, VC들도 심사 경험을 쌓았습니다. 오름테라퓨틱 같은 사례가 축적되면서 성공 경로에 대한 감각도 생겼고요. 이 분야는 실증 인프라와 규제 개선이 핵심 병목입니다.
양자와 우주·항공은 사정이 다릅니다. 시장 자체가 아직 형성 단계라 매출을 낼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사실상 유일한 초기 고객인 경우가 많죠. 이런 분야에서는 창업 지원보다 공공 조달을 통한 초기 수요 창출이 더 직접적인 처방일 수 있습니다.
SMR과 핵융합은 아예 다른 차원입니다. 개별 스타트업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 대기업과 공기업이 주도하고 그 아래 부품·소재 기업이 붙는 구조가 현실적입니다. SPC 모델이 이 분야에서 먼저 거론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라는 하나의 틀로 일곱 분야를 다루기보다, 분야별로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가 발주 시장에 미칠 영향
공공 정보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 문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언뜻 R&D 정책이라 무관해 보이지만, 몇 가지 접점이 있습니다.
먼저 창업 지원 AI 에이전트는 결국 시스템 구축 사업으로 발주됩니다. 기존 창업지원 포털이나 R&D 관리 시스템의 고도화 형태로 나올 가능성이 높고, 그 안에 에이전트형 기능이 요구사항으로 들어가겠죠. 이런 사업의 ISP나 ISMP를 준비한다면 지금 나온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이 상위계획 근거가 됩니다.
다음으로 딥테크 실증종합지원센터와 분야별 거점입니다. 물리적 시설이지만 장비 예약, 실증 데이터 관리, 이용 이력 관리 같은 정보시스템이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유사 사례로 규제자유특구나 테스트베드 관련 시스템 구축 실적이 있다면 연결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투자형 R&D 시범사업입니다. 정부가 지분을 갖는 구조라 기존 R&D 관리 시스템으로는 처리가 안 됩니다. 출자 관리, 지분 변동 추적, 회수 정산 같은 기능이 새로 필요한데, 이건 사실상 별도 시스템 영역입니다.
이 전략에 빠져 있는 것
칭찬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짚어야 할 공백도 있습니다.
가장 큰 건 예산 규모가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투자형 R&D 시범사업이 몇 개 과제 규모인지, 초장기 펀드를 얼마나 조성하는지, SPC에 정부가 얼마를 출자하는지가 공개된 내용에 없습니다. 정책 문서 단계라 그럴 수 있지만, 규모가 정해지지 않으면 선언과 실행의 차이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2027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이 항목들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를 봐야 실체가 드러날 겁니다.
두 번째는 실패에 대한 태도입니다. 딥테크는 실패율이 높은 게 정상인 영역인데, 정부 사업은 성과 평가에서 실패를 감점 요인으로 다루는 관행이 남아 있습니다. 투자형 R&D를 도입해놓고 개별 과제의 실패를 문책하면, 담당 공무원은 안전한 과제만 고르게 됩니다. 그러면 딥테크 창업 활성화라는 취지 자체가 무너지죠. 실패를 어떻게 회계 처리하고 평가에 반영할지에 대한 기준이 함께 나와야 합니다.
세 번째는 규제 개선의 구체성입니다. BCI 전임상 시설처럼 명확히 지적된 문제도 있는데, 이번 전략에서는 “대학과 출연연의 창업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수준으로 서술됐습니다. 어떤 규정을 언제까지 어떻게 바꾸는지가 빠지면 부처 간 협의 단계에서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딥테크 창업 지원은 한국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미국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중소기업혁신연구(SBIR) 프로그램을 통해 오래전부터 고위험 기술의 초기 단계를 국가가 떠받쳐 왔습니다. 실패를 전제로 설계된 구조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유럽연합은 유럽혁신위원회(EIC)를 통해 보조금과 지분투자를 결합한 블렌디드 파이낸스 방식을 운영하는데, 이번에 한국이 도입하려는 투자형 R&D와 성격이 비슷합니다.
즉 투자형 R&D 자체는 새로운 발명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가 먼저 해본 방식을 뒤늦게 들여오는 쪽에 가깝죠.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검증된 모델을 가져오는 게 무리한 실험보다 안전할 때가 많으니까요. 관건은 제도를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까지 함께 이식할 수 있느냐입니다. 껍데기만 가져오면 이름만 투자형인 보조금이 됩니다.
연구자 입장에서 지금 챙길 것
연구실에서 창업을 저울질하는 분이라면 이 전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당장 신청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린 건 아닙니다. 정책 방향이 확정된 단계라, 실제 공고는 후속 사업 설계를 거쳐 나옵니다. 다만 미리 준비해둘 수 있는 게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 연구성과가 7대 SEED 분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리해두는 겁니다. 우수 R&D 성과를 선별해 창업 지원으로 연계하는 구조라, 선별 단계에서 분야 정합성이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속 기관의 창업 관련 규정을 미리 확인하는 것입니다. 겸직 승인 조건, 지분 보유 한도, 기술이전 시 실시료 배분 비율 같은 항목입니다. 제도 개선이 예고돼 있긴 하지만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미정이라, 현행 규정에서 어디가 걸리는지부터 파악해두는 게 순서입니다.
TeX-Corps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공계 청년의 딥테크 창업 역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으로 이번에 확대가 예고됐습니다. 창업을 확정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프로그램을 거쳐두면 나중에 지원사업 심사에서 준비도를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앞으로 지켜볼 지점
이 전략이 실제로 작동할지 판단할 지표는 몇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2027년도 예산안에 투자형 R&D와 초장기 펀드가 얼마나 반영되는지입니다. 규모가 상징적 수준에 그치면 시범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창업 지원 AI 에이전트가 실제로 구축되는지,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자동화하는지입니다. 단순 안내 챗봇 수준으로 나오면 기존 창업지원 포털과 다를 게 없습니다. 문서 초안 작성이나 지원사업 매칭까지 실제로 처리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고요.
셋째, 대학·출연연 창업 제도 개선이 실제 규정 개정으로 이어지는지입니다. 겸직 승인이나 지분 보유 한도 같은 조항이 실제로 바뀌는지를 보면 정부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넷째, 딥테크 실증종합지원센터의 입지와 운영 주체입니다. 기존 출연연 인프라를 활용하는지 신규로 짓는지에 따라 착수 시점이 몇 년씩 갈립니다. 기존 시설을 개방하는 방식이면 내년부터도 가능하지만, 신규 건립이면 예비타당성조사부터 밟아야 해서 실제 가동은 한참 뒤가 됩니다. 8월 12일 보고회에서 나온 요구가 “지금 당장 쓸 실증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던 만큼, 속도가 중요한 항목입니다.
배경훈 부총리는 “AI 경쟁의 진정한 성과는 우수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현장과 국민 일상에서 활용되는 AI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은 AI에 관한 것이지만, 딥테크 전반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논문과 특허가 쌓이는 것과 그것으로 먹고사는 회사가 생기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마무리하며
딥테크 창업 활성화 전략은 화려한 문서는 아닙니다. 7대 SEED 보고회에서 쏟아진 현장의 요구를 정책 언어로 옮겨 담은 정리본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 안에 투자형 R&D, 초장기 펀드, 민관 SPC, 창업 지원 AI 에이전트처럼 기존 방식과 결이 다른 항목이 여럿 들어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특히 정부가 창업 지원 업무 자체를 AI에 맡기겠다고 명시한 건, 공공 부문의 AI 활용이 대국민 서비스를 넘어 내부 업무로 넘어가는 신호로 읽힙니다. 딥테크 창업 활성화라는 제목만 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대목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이런 전략은 발표 시점보다 1년 뒤가 진짜 평가 시점입니다. 예산이 얼마나 붙었는지, 공고가 실제로 나왔는지, 규정이 바뀌었는지를 그때 확인해보면 이번 문서가 선언이었는지 실행 계획이었는지 판가름 날 겁니다. 저도 내년 이맘때 한 번 다시 짚어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연구실 성과가 회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요. 돈일까요, 시간일까요, 아니면 제도일까요. 의견 있으시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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