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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하얼빈, 짧기에 더욱 빛났던 청년 안중근을 만나다

by 이페토(Effetto)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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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짧기에 더욱 빛났던 청년 안중근을 만나다
하얼빈, 표지

작가들의 작가 김훈

하얼빈은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소설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이야기를 집필하는 것을 작가 활동의 인생 과업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칼의 노래라는 작품이 있는데, 교보문고의 서평에 따르면 이 칼의 노래와 같이 단순히 요약되기 쉬운 실존 인물의 삶을 철저한 상상력으로 탄탄하게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의 나이 31세,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이다. 그런 청년이 조국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심정으로 희생을 마음먹었을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록 역사적 사실 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그려낸 이야기이지만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엿보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소설에서의 상황 묘사, 등장인물의 대사 등은 간결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을 이해하게 하는 것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오히려 간결하고 강렬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끌려가듯이 읽은 듯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의 느낀 점을 간단하게 나누고자 한다.

31살 청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던 그의 나이는 31살 이었다. 지금 나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러한 큰 일을 어깨에 짊어지기에는 어린 나이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는 본인의 결말이 어떨지 이미 알고 실행에 옮겼다.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였을 것인가.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이 엄청났을 것이다. 31살의 나와 비교해 보자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라는 고사하고 나의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를 건사하는 생각만 해도 양 어깨가 무거워진다. 안중근, 그도 거사를 치르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을 때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그는 얘기한다. 가족들이 하루만 하얼빈에 일찍 도착했더라면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천주교인이었다. 가족들을 떠나야한다는 슬픔, 살인을 결심했을 때 포기했을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천주교인으로서의 신앙심, 거사를 성사시킨 후의 두려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자신에게 부딪쳐올 때 그는 여러 번 다짐하고 결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소설 속의 안중근은 하얼빈의 방안, 천장 속 이토를 향해 그렇게 여러 번 총을 겨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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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은 처연하고 의연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것을 계기로 재판장에서 세계를 향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가 정치적인 것과 연관되어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가 무지몽매하여 오해한 것으로 몰고 갔다.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그들이 폭동이라고 불렀던 독립운동이 계속되어 왔었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일본인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안중근의 행동은 의연했다. 그는 동생에게 자신의 시신을 하얼빈에 묻었다가 독립 후 대한민국으로 옮겨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의 묘지가 성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순감옥 내 공동묘지에 그를 묻고 만다. 이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나라면 죽음 앞에서 그렇게 의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생각조차 하기가 버겁다. 말로는 무엇이든 못하겠냐마는 실제로 그 상황이 닥치게 되면 누구보다 비겁하게 살아남고 싶어 할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을 안중근 의사는 31살의 젊은 나이에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냈다. 또한 그의 희생에 보답하듯 우리나라는 해방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나의 글쓰기가 참 비루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의 글쓰기 실력이 참 부족하여 이렇게 대단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다. 언젠가 내가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다면 지금보다 나은 글쓰기 실력으로 나의 생각을 제대로 담아내고 싶다.

앞에서도 계속 반복되어 표현되었지만, 하얼빈이라는 소설은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나를 계속해서 비교하게 만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렇기에 그가 더욱 위대하게 느껴졌다. 한 달 정도 뒤면 3.1절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주신 분들을 조금이나마 미리 기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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